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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레트로토피아 : 실패한 낙원의 귀환

레트로토피아 : 실패한 낙원의 귀환
  • 저자지그문트 바우만
  • 출판사arte(아르테)
  • 출판년2018-12-20
  • 공급사(주)북큐브네트웍스 (2019-01-02)
  • 지원단말기PC/스마트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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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스탤지어는 유토피아를 대신할 수 없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분석한

    현대사회의 종합 진단서!







    현대성 이론의 대가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작!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운 시대

    다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바우만의 마지막 성찰과 통찰



    난민 문제, 경제적 격차, 인종차별, 정치에 대한 불신,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 등은 우리 사회가 세계와 함께 앓고 있는 병이다. 『레트로토피아』는 모두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 버린 현장에서, 두 차례의 전체주의를 온몸으로 겪어낸 노학자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띄우는 희망의 편지다.















    ◎ 도서 소개



    자유시장 경제와 민주주의라는 토대 위에 오늘날 우리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얻은 것만 같다. 하지만 인류가 혁명을 통해 쟁취한 이 자유는 우리 각자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워줬다. 자유를 떼어서 양도한 대가로 국가권력이 보장했던 신체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 심지어는 행복까지도 모든 책임은 이제 우리 각자가 져야 한다.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우리를 더 편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줄 거라고 기대했던 인터넷 기술과 미디어의 발전이었다. SNS를 통해 매일 중계되는 다른 사람들의 '더 행복한 모습'은 나를 더 불행하게 만들고, 음모론과 가짜뉴스로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가 원하던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으니, 이제 아무것도 없는 원초적인 세계, 자궁으로 다시 돌아가고만 싶다. 바우만이 진단한 현대의 모습이다.



    폭력을 조장하고 공포를 만드는 것은

    우리인가, 그들인가?



    과연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성공했을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홉스는 강력한 국가권력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런 국가권력의 등장으로 우리는 인간에게 내재한 폭력성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근데 정말 그럴까? 최근 끊이지 않는 크고 작은 폭력에 대한 뉴스들을 보면, 폭력은 전혀 우리 사회에서 축출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군수산업의 지속적인 성장, 소형 총기 거래에 대한 국가의 방관을 보면 폭력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리라 믿었던 국가가 폭력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폭력이 더 자주, 더 크게 인지되는 데에는 미디어의 영향도 있다. 폭력은 늘 잘 팔리는 뉴스기 때문이다. 발달한 인터넷 미디어 환경은 그야말로 폭력을 여기저기 전시하기에 적당했다. 하지만 미디어 자체가 진짜 원인은 아니었다. 진짜 원인은 세계화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좌절된 사람들의 분노다. 세계화의 과정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아온, 폭력 말고는 자기 목소리를 낼 다른 수단이 없는 약자들이 매일 새로 생겨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국가권력이 묵인한 무기들을 활용해 사회가 무가치하다고 내팽개친 자신의 삶을 ‘자살폭탄테러’와 ‘무차별 살인’ 같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사용한다.

    오늘날 자행되는 폭력의 무서운 점은 대상을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 때문에 폭력에 대한 공포는 특수한 집단이 아니라 모두에게로 스며든다.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이 모두에게 엄습한다. 이 공포와 불안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분노하는 약자들을 더 혐오하게 만든다.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가난하고 무능한 이방인들에 눈을 흘기게 되는 것은, 거기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비극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소비사회의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저 이방인들과 다를 바 없는 비참한 모습이 될 것이란 불안이 엄습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이 폭력적으로 보이는 이방인들에게 맞서기 위해 서로 똘똘 뭉쳐야 할 것 같다. 미래로 나아가는 진보의 길은 이제 희망에 찬 길이라기보다 지금 가진 수준의 안정과 지위도 빼앗길지 모르는 위험한 길이다. 하지만 미래와는 달리 과거의 기억은 친숙하고 아늑하다. 가끔 불만스럽긴 하지만 뭐 지금까지처럼 참을 만하다. 이렇게 미래로 나아가는 길에 지친 사람들이 과거에 머무르고 싶어 할 동안 정치 세력들은 과거를 조금씩 자기 편한 대로 바꾸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어차피 ‘사실 그대로’인 역사는 없고, 역사가 필요한 이유는 명확하기 때문이다. 우파 포퓰리즘이 성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과 권력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트럼프 지지자들은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전통적인 가치가 차별적이더라도, 그게 더 낫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족주의는 인간의 생물학적인 특질인 것처럼 포장되거나, 불합리해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옹호된다. 아무리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국경을 봉쇄해도 의미가 없다고 전문가들이 소리 높여 말해도, 실상이 어떻든, 민족주의와 민족주의자들을 믿는 게 편하다. 그렇게 오늘날의 들불처럼 민족주의가 번지고 있는 상황을 바우만은 ‘회귀’의 흐름으로 분석한다.

    민족주의를 근거로 외국인을 적으로 돌리는 정치적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민족국가의 다른 정치적 자주권의 요건들인 군사, 경제, 문화가 각각 금융과 무역, 정보화라는 물살에 씻겨 내려가 버리자 남아 있는 유일한 전략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이주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식민지 개척을 위해 지금의 강대국에서부터 신대륙으로 이주했다면, 이제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삶을 개선할 유일한 기회들이 모두 아주 소수의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이민자들이 신대륙의 개척자들처럼 대단한 야망과 야망을 실현할 무기들을 들고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이민자들의 희망이란 근근이 이어가는 삶, 그뿐이다. 반대로 무기로 가득한 곳은 과거 식민지 개척자들이 점령했던, 과거의 그 신대륙들이다. 여기서는 매일 종교, 정치적인 내전과 갈등이 일어나고, 더 많은 사람이 매일 실향민이 된다. 대표적인 지역은 중동 지역이지만, 중동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심리상담과 떡볶이로 마음을 달래는

    역사상 가장 우울한 젊은이들의 시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뿐 아니라 기분부전장까지도 이제 더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발전과 개선에 허락된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은 노년층보다도 더 많은 수의 청년 세대가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한다. 얼마 전 유튜브를 통해 초등학생 사이에 전파됐던 ‘자살 송’에 대한 논란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바우만은 이런 현상들을 ‘자궁으로의 회귀’로 진단했다.

    소비사회는 사람들 모두를 잠재적 경쟁상대로 만들어버렸다. 계속되는 경쟁 때문에 한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이들도 좌절감에 압도됐고, 이제 내일이 앞으로 가는 길이든, 뒤로 가는 길이든 신경 쓰지도 않는다. 대신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감당 못 할 무력감을 지워내려고 한다. 그저 자신의 작은 행복만이 지상과제인, 자본주의가 키우고 단련시킨 이 나르시시스트들을 사회는 골칫거리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들을 ‘성격 장애’로 진단해야 할지, ‘사회 장애’로 진단해야 할지 헷갈린다. 아니면 아예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정상 상태’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어쨌든 바우만은 이들의 예후가 ‘불안’에 의한 것이라는 진단에 동의한다. 내 삶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압박감, 원하는 일을 하는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요에서 오는 불안 말이다. 지금 청년들은 평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도록 훈련됐다. 그렇게 계속 자신에게 함몰되도록 강권 받았다. 행복과 건강, 자기계발까지도 의무로 짊어진 청년들은 역사상 가장 우울한 세대가 되었다. 가장 많이 정신의학과를 찾고, 항우울제를 먹는다. 자기계발서들은 이런 현상을 가장 영리하게 이용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면 남도 사랑할 수 없다든지, 혼자서 가고 싶었던 식당에 가 밥을 먹는 일은 용감함의 증거라든지 하는 조언을 건넨다. 그리고 더 많은 정신과 상담과 약을 통해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라고 권한다. 혹은 선을 넘은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을 가이드를 제공하거나, 이미 선을 넘은 이기주의자들에게 대응할 가이드를 판매한다. “네 슬픔의 바다를 즐겨. 거긴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어.” 개인적인 슬픔을 적나라하게 트위터에 올렸던 멀리사 브로더는 여러 권의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가 됐다. 브로더는 자궁을 열반nirvana이라는, 현대사회의 과잉에서 벗어날 낙원을 사람들에게 제안했다. 바우만은 브로더의 낙원뿐 아니라 모든 현대사회의 병증을 고치려는 민간요법들이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여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 경고한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외면하지 마라!



    세계가 발전해온 과정은 점차 불평등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처럼 보였다. 이런 과정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정치 성향이나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입장 차이를 막론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곧바로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국가가 해왔던 일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거래 관계를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국가-자본가-노동자 간의 안정적 관계는 깨져버렸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바우만은 그 이유를 세계화라는 틈을 타 감시를 소홀히 한 국가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자본가로 짐작한다.

    오늘날 국가와 규범은 힘과 권위를 잃고 있다. 하지만 규범이 힘을 잃으면서 사람들이 통제에서 자유로워졌다기보다는 본능과 욕구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보는 편이 옳다고 바우만은 말한다. 모두 자신의 본능을 좇는 상황에서 불평등은 더욱 격화됐고, 이런 위험한 사태는 계속 경고됐던 일이지만, 경고는 계속 무시돼 왔다.

    불평등 심화에 불을 붙인 것은 바로 ‘상대적 박탈감’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늘 느껴왔던 불편과는 다른, 절대적 크기는 더 작더라도 정서적으로 훨씬 타격이 큰 불편의 감정이다. 더군다나 이 감정은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부자들까지 괴롭힌다. 이렇게 보편화한 박탈의 감정은 결국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더라도 이 경쟁의 상황에서 박탈감을 없앤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런 현상을 부추긴 것은 역시나 권력과 정보의 세계화였다. 이전에는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에게만 한정됐던 박탈감의 기준들이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세계로까지 넓어졌고, 이제 특별한 기준도 없이 모두에게 박탈감을 느껴야만 한다. 그런데, 이전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이 불평등과 박탈의 감정이 혁명으로 이어지게 될까? 바우만의 단기적 전망은 부정적이다.

    부정적인 전망을 긍정적인 미래로 바꾸기 위해 바우만은 ‘기본소득’ 개념의 유용성을 힘주어 말한다. 바우만은 거의 이 개념이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며, 실질적으로 비용대비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본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이 제도를 의도적으로 혹은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방하고 의심한다. 여전히 복지 국가 논의에는 ‘보편구제설’과 ‘취약계층우선론’의 대립이 존재한다.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주지하다시피 ‘인권의 인정’ 유무이다. 보편구제설에 해당하는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여러 전문가의 검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본가들은 이 제도를 두려워하고 있다. 바우만은 천천히, 이 두려움을 잠재울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다. 실질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 문제 상황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우리는 진짜 혁명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예견한다.

    바우만은 부족으로의 회귀, 홉스로의 회귀, 자궁으로의 회귀 모두 같은 원인에서 발생한 문제 상황들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원천의 소거 없이는 이 회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고 진단 내린다. 바우만은 시종 발달한 인터넷 미디어 환경에 주목한다. 바우만의 뛰어난 점은 이런 인터넷 미디어 특성을 인터넷 미디어가 확산되기 훨씬 전에 발표된 고전에 가까운 이론들부터, 가장 최신의 이론까지를 관통해 날카롭게 짚어낸다는 점에 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도 불구하고, 노학자의 유고가 아직까지 울림을 가지는 이유도 바우만의 이런 통찰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단기적 비관주의자, 장기적 낙관주의자”를 자칭했던 그의 유작, 레트로토피아는 가장 신랄한 우리 사회의 종합 진단서다.





    ◎ 책 속에서



    ‘진보’라는 이념을 삶의 개선 추구의 사유화 및 개별화에 팔아넘긴 것은 권력자들이었으며 대다수 국민들은 이를 해방이라고 받아들였다. 해방이란 사회복지사업과 국가보호라는 대가를 치르고 복종과 규율이라는 엄격한 요구에서 벗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계속 늘고 있는 숱한 사안들에서 이런 해방의 희비가 교차한다는 사실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서문-향수鄕愁의 시대〉 중에서, p.29









    현대 국가들이 모방하려고 분투하는 목표인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무겁고 거대해 움직이지 않는 본체가 땅에 굳게 고정된 형태로 그려졌다. 본질적으로,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반反이동성’ 장치였던 것이다. ‘치고 빠지기’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도록 설치하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구멍투성이에 쉽게 침투 가능한 영토의 경계를 지닌 리바이어던이란 조화되지 않는 용어 상의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국경의 다공성과 침투성은 단지 특정 지역과 파견단의 일탈이 아니라, 정치의 영구적인영토성과 결부된 권력의 세계화가 꾸준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잉태된 새로운 세계 (무)질서의 규범이나 마찬가지다.







    〈1-홉스로의 회귀?〉 중에서, pp.56~57









    미래라는 타국을 방문해 탐험하기를 고대하는 관광객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제는 우리 중에서 가장 낙관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그리고 일부 사람들에 따르면, 가장 걱정이 없고 태평한) 사람들로 국한되어버렸다. 연달아 살아남은 현재보다 훨씬 즐거운 경험으로 가득 찬 미래를 발견하기 바라며 서둘러 미래로 떠나는 사람들의 수는 훨씬 더 빨리 줄어들 것 같다. 그 결과 공상과학 영화와 소설이 공포영화와 괴기 소설로 분류되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2-부족으로의 회귀〉 중에서, pp.106~107









    브레흐만은 우리에게 ‘복지국가’식 사고방식의 유산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라고 촉구한다. 이 사고방식이 ‘일하는 사회’의 시대에 전개되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오늘날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안전감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야 할 복지국가는 의심과 수치심을 안겨주는 제도로 변질됐다.”(p. 69) 덧붙이건대, 타성에 젖어 여전히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방식은 부를 재분배하지 않고, 이제 ‘생활보호를 받는 처지’라는 조건을 사회적 오명으로 낙인찍는 일을 맡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적절한 조치가 필요했던 비통한 상황에서 행해진 사회불평등을 묵인하는 데 (그리고 가중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는 모든 죄책감을 공공의 양심에서 덜어냈다.







    〈3-불평등으로의 회귀〉 중에서, pp.180~181









    우리 중 일부는 다가올 시대가 새롭고 더 전망 좋은 시작이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부터 인내심을 얻는다. 하지만 좌절감에 중독된 희망으로 인해 환상이 깨지면서, 격분한 다른 사람들은 과거로의 회귀 움직임에 열망을 투자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미래든 과거든) 어느 한쪽 방향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들은 작지만?날마다?만족감을 주는 도구를 사용해 감당할 수 없는 예측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찾느라 바빠 보인다.







    〈4-자궁으로의 회귀〉 중에서, pp.194~195









    홉스로든, 부족으로든, 불평등으로든, 아니면 자궁으로든, ‘회귀하려는’ 흐름을 노련하게 힘도 들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막아낼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지구의 인간 거주자들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을 것인지, 아니면 같이 공동묘지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맺음말-변화를 기대하며〉 중에서, pp.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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